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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신문] 대림절에 이웃 돌보는 교회가 되자
  • 게시판 작성일 아이콘2019.12.02
  • 게시판 조회수 아이콘조회수 280

대림절에 이웃 돌보는 교회가 되자

2019.11.28 / 기독교신문 / 허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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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대림절의 시작과 동시에 각지에서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진다. 모두가 설레고 행복해야만 하는 이때 낭만과 설렘이 아닌 추위와 배고픔을 상대해야만 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몸까지 허약하여 추위를 감당하기 버겁기 그지 없다. 우리는 그들의 아픔과 좌절을 언제나 지켜봐왔다. 가슴 아픈 현실이다.


우리가 연탄은행과 무료급식, 노숙자쉼터 등을 통해 이들을 돕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삶이 나아지기는 하는 것일까란 질문은 언제나 머릿속을 맴돈다.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을 만큼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우리 단체이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우리의 이웃들은 여전히 춥고 배고프다. 거기에 심적인 좌절감과 외로움까지 더해 그들은 대림절의 시작에 감사할 여유가 없다.


예수께서 춥고 배고픈 자들을 건져내시기 위해 오신지 2천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왜 우리의 이웃들은 이토록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일까. 예수의 정신을 따르겠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이리도 넘쳐나는데 왜 아직까지도 기본적인 삶의 필요조건조차 결여한 삶의 양식이 존재하는 것일까. 평생을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하며 여전히 이러한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림절의 시작은 예수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게 만든다. 예수께서 살아계시던 그때도 가난한 이들이 많았고 지금도 그렇다. 예수께서 그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셨던 것처럼 우리도 대림절을 맞아 그들이 아무런 추위와 배고픔 없이 이 겨울을 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예수의 다시 오심의 의미 아니겠는가. 소외된 이웃들이 더 이상 변두리에 치워지지 않는 사회를 기다리는 것이 대림절의 의미 아니겠는가.


우리는 마냥 기다릴 수 없다. 우리는 기독교인이고 예수의 제자들이다. 우리는 예수의 다시 오심을 우리 손으로 이뤄내야 한다. 예수가 그랬듯 가난한 이들을 찾아 섬기고 먹이고 위로하며 함께해야만 한다. 그것이 기독교인의 삶이요, 대림절과 성탄절을 맞이하는 자세다. 우리가 연탄을 나르고, 밥상을 나누는 일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교회가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을 감당하고 있을 뿐이다.


만일 우리의 일이 대수로운 것이 되어버리는 사회라면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절실히 회개해야만 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인간됨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예수를 따르는 일은 인간됨의 길을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으로써 고통을 받고 있는 이웃을 염려하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들이 어디 있겠는가.

얼마 전 미국에서 유학 중인 학생들이 밥상공동체를 찾아와 연탄배달을 한 적이 있다. 봉사활동을 마치고는 매년 오겠다고 약속했다. 아픔의 현장,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고국의 현장에서 흘린 땀방울을 통해 무언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봉사활동은 이웃을 돕기 위해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이 별나지 않는 지혜를 교회들이 깨닫길 바란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깨닫길 바란다. 나눔은 받는 이의 즐거움보다 주는 이의 즐거움이 더 크다는 사실을. 받는 이가 느끼는 행복보다 주는 이가 느끼는 행복이 훨씬 크다는 것을.


교회들이 이번 대림절을 맞아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길 당부한다. 물론 교회들은 잘하고 있다. 어느 단체보다 열심히 구제사역을 감내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하다. 이리도 교회는 많은데 이리도 춥고 배고픈 이들도 많으니 말이다. 더 열심을 내자. 이번 겨울에는 춥고 배고픈 이웃이 없어 예수님의 다시 오심이 선포되는 대림절기를 맞이할 수 있길 기도한다.


/밥상공동체 연탄나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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