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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기 전례없는 연탄값 상승에”…시름깊은 빈민촌
  • 게시판 작성일 아이콘2019.01.06
  • 게시판 조회수 아이콘조회수 264

“혹한기 전례없는 연탄값 상승에”…시름깊은 빈민촌

2019.01.06 / 세계일보 / 안승진 기자

 

본격적인 한파를 앞둔 지난 3일, 서울 불암산 자락에 위치한 노원구 백사마을 골목 이곳저곳에 연탄들이 쌓여 있었다. 고령의 빈곤층이 모여 사는 이 마을에서 연탄은 겨울을 나기 위한 필수 연료이기 때문이다.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이우주 기자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거리에 놓인 연탄들.

사회복지재단 ‘연탄은행’에 따르면 이 마을 1000여개 가구 중 450가구는 보일러 연료로 연탄을 사용하고 있다. 서울 내에서 가장 연탄을 많이 사용하는 마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한파를 앞두고 치솟은 연탄값에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2015년 500원 수준이었던 연탄 한 개 값이 지난해 11월 기준 800~1000원 수준으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 최근 3년간 50% 오른 연탄 값…에너지 빈민층 혹한나기 ‘빨간불’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 사는 박해숙(84)씨가 보일러 안의 연탄을 갈고 있다. 이우주 기자

백사마을에서 50년을 거주한 박해숙(84)씨는 3일 세계일보와 만나 “연탄값 때문에 걱정이 말도 못하다”며 “정부가 늙은이들 생각은 안하고 연탄값을 영문도 모른 채 올리고 있다”고 한탄했다. 겨우 방 한 칸 크기 집에 사는 박씨는 겨울 기준 하루 4개의 연탄을 사용한다고 했다. “조금 (연탄) 주문하면 오지도 않아. 연탄 필요한 마을 사람들 모아서 전화로 와 달라고 해야 돼.” 백사마을을 찾아오는 연탄 판매상은 배달료를 따져 마을 저지대는 900원, 산 중턱 고지대는 1000원 가량의 연탄값을 받고 있었다. 이를 계산해보면 한 달 연탄으로만 10만원이 나가는 셈인데, 박씨는 높아진 가격에 부담을 느껴 한 번에 20∼30개씩만 연탄을 구입한다고 했다. 그는 치솟은 연탄 값을 매달 25만원의 기초연금으로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고개 숙였다.

이날 박씨는 연탄이 오래가도록 보일러 위에 따로 뚜껑을 덮고, 방바닥에 이불을 깔아 열 손실을 줄이고 있었다. 가족이 있어 정부의 연탄 지원대상에서 제외된 박씨는 복지단체들이 나눠주는 연탄에 의지해 하루를 나고 있었다. “(연탄을 가져다 주는) 목사님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박씨의 가정에는 기름보일러도 설치돼 있었지만 석유 값을 감당하지 못해 거의 쓰지 않고 있었다.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 사는 김점녀(83)씨가 사용하는 연탄보일러.

이웃집에 사는 김점녀(83)씨도 겨울나기가 막막하기만 하다. 김씨는 정부로부터 연탄쿠폰을 받고 있지만 1년치 쿠폰으로 감당할 수 있는 건 고작 ‘75일’ 수준에 불과하다고 했다. 김씨는 작은 방과 거실이 달린 집을 데우기 위해 겨울 기준 하루 연탄 6장을 사용했다. 고령의 김씨는 당뇨, 신부전증 등을 앓고 있어 병원비로 매달 20만원을 지출했는데 25만원의 기초연금으로 연탄을 따로 구입하기에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김씨는 “정부가 왜 이렇게 연탄값을 올리는지 모르겠다”며 “연탄값이 금값이라 예전처럼 조금씩 살 수도 없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저소득 13만 가구는 연탄보일러 사용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정부대책

한파를 앞둔 지난해 11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연탄가격을 19.6%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연탄가격은 최근 3년간 50.8%(300원 수준) 상승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G-20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계획’의 후속조치라며 오는 2020년까지 생산원가 수준으로 연탄 판매가격을 ‘현실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연탄가격은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정부 보조금을 통해 생산원가 이하로 판매됐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생산원가 수준으로 가격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올해 연탄가격은 생산원가의 76% 수준으로 판매되고 있다.

문제는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 대부분이 빈곤 계층이라는 것이다. ‘연탄은행’이 2017년 국내 연탄사용가구를 자체 조사한 결과 13만 464가구가 여전히 연탄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소외가구(42.6%), 기초생활수급자(36.8%), 차상위 가구(11.9%) 등으로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사진=이재문 기자

정부는 이런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대책으로 지난해 저소득층 6만4000명을 ‘연탄쿠폰 지원대상’으로 지정하고 한해 지급되는 31만3000원의 연탄 지원금액을 40만6000원으로 상향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원금으로 살 수 있는 연탄은 400여장에 불과해 저소득층 사이에선 겨울을 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집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한해 겨울을 나기 위해서 연탄은 평균 1000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부양가족 등을 이유로 지원대상에 들지 못한 6만여 가정은 정부 쿠폰조차 지급되지 못해 올해 난방에 대한 시름이 깊다.

연탄값 인상에 따라 복지단체의 연탄 지원도 줄어들 전망이다. 연탄은행은 매년 한 가구에 연탄 150~200장을 나눠줬지만 이번 겨울에는 100~120장 수준을 나눌 계획을 세웠다. 후원금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연탄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정부는 연탄 인상 발표와 함께 저소득층 연탄 사용 가구가 유류, 가스 등 다른 난방 연료로 전환할 경우 보일러 교체비용 및 단열, 창호 시공비용을 전액 지원하겠다는 ‘연탄 근절 대안’도 내놨다. 이에 저소득층 가정들은 “기름보일러가 없어서 못 쓰는 게 아니라 기름 값이 비싸서 못 쓴다”며 “현실성 없는 대책”이라는 입장이다. 난방을 위해 석유는 월 2드럼 정도가 필요한데 이는 40만원 수준으로 연탄 가격의 4배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사진=이재문 기자

◆“연탄 값 인상 막아주세요”...손 편지, 1인 시위, 청원 잇따라

연탄 가격 상승에 대한 답답함에 빈민촌에 사는 노인들은 삐뚤삐뚤한 글씨로 대통령에게 편지까지 쓰고 나섰다. 편지를 작성한 김기분씨는 “문재인 대통령님 연탄이 비싸서 우리가 춥다. 산동네는 너무 추운데 연탄 값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강원도 원주에 사는 박용레씨도 “연탄값을 올리지 말아 달라”며 “없는 서민들은 연탄이라도 때야 추위를 이기고 겨울을 날 수 있다”고 적었다.

지난달 13일에는 ‘연탄이 금~탄이 되고 있어요. 어떻게 좀 막아주세요!’라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 지난 3일 오후 기준 1800여명의 동의를 받았다. 사회복지단체 ‘연탄은행’의 자원봉사자들은 지난달 31일부터 연탄 가격 인상을 반대하는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벌이기 위해 거리에 나왔다.

‘연탄은행’과 ‘밥상공동체’의 허기복 대표는 3일 세계일보와 만나 “후원을 하다보면 어르신들 사이에서 ‘연탄값이 금탄’이란 말이 나오지만 다들 고령이라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0%정도 연탄값을 올릴 거 같은데 세상에 두 자리 수로 물가를 인상하는 법은 없다”고 꼬집었다. 허 대표는 이어 “정책을 추진할 때 일괄적으로 하기보다 상대방과 소통을 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설 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다고 한만큼 이러한 민심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연탄가격 인하를 촉구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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