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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택지는 연탄뿐이에요"…달동네의 애잔한 겨울나기
  • 게시판 작성일 아이콘2018.12.26
  • 게시판 조회수 아이콘조회수 271

"우리 선택지는 연탄뿐이에요"…달동네의 애잔한 겨울나기

 

장당 105원 오른 연탄에 서민들 겨울 난방 걱정
연탄은행 "연탄가격 인상 반대 릴레이 시위할 것"

 

2018.12.23 / 뉴스1 / 유경선기자

 

서울 노원구의 한 마을에 다쓴 연탄이 놓여있다.2018.12.23/뉴스1 © News1

 


서울 노원구의 한 산자락 달동네에는 매해 12월이면 전국 각지에서 흰 면장갑을 낀 사람들이 모여든다. 연탄봉사의 메카와도 같은 이곳에서 봉사자들은 평균연령 80세가 넘는 이 마을의 각 가정으로 연탄을 정성스레 배달한다.

밥상공동체복지재단 연탄은행은 이 마을의 겨울을 책임지고 있다. 각 기관이나 기업 등에서 연탄을 후원받아 저소득층과 노인들의 구들장을 덥힌다. 연탄은행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이따금씩 동네를 거닐던 노인들은 활짝 웃으며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건넸다.


◇"에너지 빈곤층에 연탄은 불가피한 선택지…기름이 4배 비싸"

"직경 145㎜, 높이 150㎜, 무게 3.3~3.6㎏에 높이 30㎝에서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아야 정품 연탄입니다"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는 이렇게 말하며 경사진 마을길을 올랐다. 서울 지역 최저기온이 영하 6도를 기록한 12일, 이날도 두 개 단체에서 연탄 봉사가 예정돼 있었다. 봉사자들은 지게에 적게는 4개, 많게는 7~8개의 연탄을 지고 깨질세라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4개만 져도 13㎏에 이르는 무게에 허리가 절로 휘었다.

이 마을에는 집집마다 하얗게 연소된 연탄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구청에서 나온 연탄 수거 차량이 다 탄 연탄을 실을 때마다 뽀얀 먼지가 피어올랐다.

서울 노원구의 한 마을에서 구청 관계자가 다쓴 연탄을 수거하는 모습. 2018.12.23/뉴스1 © News1

 


허 대표는 "이 가구들은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연탄을 때는 게 아니다"며 "사실상 연탄이 유일한 선택지인 에너지 빈곤층이라서 연탄을 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대표에 따르면 기름으로 난방을 하면 연탄 난방의 4배 정도 가격이 든다. 가격이 이 정도 차이가 나다 보니 연탄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연탄가격 인상 아쉬워…겨우내 1000장 넘게 쓴다"

연탄 가격은 지난 11월23일 장당 105원 오른 639원으로 19.6%가 인상됐다. 허 대표는 "2002년부터 연탄 지원사업을 시작한 이후로 2년마다 전국 연탄가구 조사를 하는데, 2017년을 기준으로 전국 연탄 가구는 14만 가구에 이른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연탄 가구는 대부분 산자락 등의 달동네에 위치해 있다. 달동네일수록 지대가 놓고 응달이 빨리 생겨 기온은 더 낮다.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나 노인 등 빈곤·소외계층이기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도 길다. 연탄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김춘호(81) 할머니는 "날씨가 아주 추울 때는 하루에 8장도 땐다"고 시름어린 표정을 지었다. 연탄 1장이 6시간 정도 타는데, 한 번에 2장씩 때는 경우에는 하루에 8장도 금방이다.

하루에 연탄을 4장 땐다고 가정하고 가구당 겨우내 쓰는 연탄 장수를 어림잡은 결과는 1050장이다. 올해 오른 금액을 기준으로 하면 67만원선이다. 여기에 장당 100~200원씩 붙는 배달료를 감안하면 난방예산은 훌쩍 뛴다. 자원봉사자가 몰리는 12월~1월에는 그나마 배달료 걱정은 덜 수 있다.

◇"연탄 가격 올랐지만 후원 줄어"…정부 "연탄쿠폰 지원 늘렸다"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가 군인공제회로부터 연탄 2만장을 기증받고 있다. 2018.12.23/뉴스1 © News1

 


연탄 가격이 올랐지만 후원은 도리어 줄었다. 허 대표는 정부에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 연탄은 에너지 빈곤층의 사실상 유일한 난방원인데, 정부가 사전에 고지 없이 가격을 올렸다는 것이다. 또 빈곤층이 이용하는 연탄만이라도 가격을 동결하는 '연탄가격 이원화'를 생각해줄 수 없는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허 대표는 "현재 작년 동기 대비 35% 정도 후원이 줄어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연탄 배달 외에도 각 기관과 기업에 후원을 부탁하는 일이 훨씬 늘어났다. 그는 "새벽 5시부터 일정을 시작하는 날들도 잦다"며 웃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사재기 우려가 있어 연탄 가격 인상을 사전에 알려주는 것은 어렵고, 연탄 가격 이원화도 실현 가능성이 매우 떨어진다"면서 "연탄 가격이 오른 만큼 연탄을 살 수 있는 '연탄쿠폰' 지원 규모를 작년 31만3000원에서 올해 40만6000원으로 30% 정도 대폭 올렸다"고 설명했다.

허 대표는 "한 가구당 1000장 이상을 쓰는데, 40만6000원으로 지원규모가 늘었어도 400~500장밖에 구매할 수 없는 금액"이라며 "가격 인상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13일 '연탄이 '금탄'이 되고 있어요. 어떻게 좀 막아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을 올렸다. 오는 31일부터 2019년 1월31일까지 매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연탄 가격 인상에 반대하는 1인 릴레이시위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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