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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22공탄보다 따뜻한 ‘복 배달꾼’
  • 게시판 작성일 아이콘2018.12.26
  • 게시판 조회수 아이콘조회수 256

[이사람] 22공탄보다 따뜻한 ‘복 배달꾼’

2018.12.22 / 머니S / 김창성기자


허기복 밥상공동체 연탄은행 대표. /사진=밥상공동체 연탄은행




“내가 무엇을 주기 보단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를 먼저 고민해요.”
허기복 밥상공동체 연탄은행 대표는 미소가 가득했다. 21년째 연탄 기부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내가 주고 싶은 것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찾으려 애쓰는 그의 고민은 까만 연탄처럼 짙고 알차다. 이제는 우리 일상에서 멀어진 연탄이지만 그는 스스로를 ‘복(福)’ 배달꾼이라며 소외 이웃과의 만남을 멈추지 않는다. 언제나 함께 나누고 베풀며 세상에 든든한 밥상을 차리고 싶다는 그의 분주한 일상은 추운 겨울을 녹일 만큼 뜨거웠다.  

◆이웃사랑 실천, 출발은 ‘작은 다짐’ 

그의 이웃사랑 실천은 스스로에게 한 작은 약속에서 시작됐다. 신학생 시절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어려운 이웃을 위한 삶을 실천하기 위해 1994년 9월 서울에서 담임하던 교회에서 나와 무작정 강원도 원주로 내려갔다.  

그는 그곳에서 작은 교회를 담임하며 초등학교 두곳에서 상담교사로 봉사했고 원주기독병원(현재 원주세브란스 병원) 환자를 위한 도서보급활동도 진행했다.

그러다 1997년 말 외환위기로 실직한 노숙인, 쪽방촌 거주자, 영세독거노인 등이 늘어나자 그들의 생계보호와 주거지원을 위해 이듬해 4월 원주교 쌍다리 아래에서 밥상공동체를 설립했다.

허 대표는 “당시는 사회안전망이 전무하던 시절이라 막막했다”고 회상한다. 이후 2002년 12월 한 후원자의 도움으로 연탄 1000장을 갖고 3.3㎥의 작은 공간에서 사랑의 연탄은행을 세웠다.

그는 “무료급식, 집수리, 빈민상담, 취업지원 등 밥상공동체 일만 해도 너무 많았다”며 “하지만 당시 연탄 한장 가격인 250원이 없어 감기에 걸린채 일주일째 냉방에서 이불만 겹겹이 두르고 있던 팔순 넘은 어르신을 보고 밤새 잠이 오지 않아 연탄은행 설립을 결심했다”고 설명한다.

◆핀잔 딛고 일어선 ‘오뚝이’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나눔을 실천하는 그의 의지는 전국 각지는 물론, 해외까지 연탄은행 설립에 나설 정도로 확고했다.  

허 대표는 “처음 원주에서 시작할 때는 봉사자도 적고 사정도 여의치 않은데 도와달라는 요청은 많았다”며 “그래도 저를 찾는 사람을 뿌리칠 수 없어 트럭에 연탄을 싣고 원주에서 서울 수유리, 미아리 등까지 열심히 배달했고 이제는 많은 분의 도움으로 더 많은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됐다”고 미소지었다.

사랑의 연탄 나눔이 겨울철 대표 국민운동으로 자리잡았고 소액기부운동이 확대됐지만 초기에는 욕도 많이 먹었다.  

그는 “새벽까지 여기저기 돌며 후원자를 찾아다녔는데 ‘제 정신이냐’고 욕하는 사람도 많았다”며 “하지만 위축되지 않고 21년째 시민운동을 이어왔다. 가끔 정치에 뜻이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받지만 저는 가난한 이웃을 더 풍족하게 챙겨드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라고 털어놓았다.

◆가족은 내 삶의 ‘원동력’ 

그는 내가 주고 싶은 것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더 생각한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말처럼 항상 낮은 자세로 내 가족에게 든든한 밥상을 차려준다는 마음을 품고 소외이웃을 섬기고 도왔다.  

허 대표는 소외이웃의 버팀목이 됐지만 아내와 가족만 생각하면 눈물이 흐른다. 21년째 이웃사랑을 실천하면서 정작 내 가족은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이다.

그는 “소외이웃을 돕기 위해 21년 동안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욕도 먹었지만 정작 두 자녀에게는 흔한 과외나 학원 한번 보내주지 못했다”며 “교회 담임목사직까지 사임하고 지방으로 내려간 못난 남편 때문에 아내가 학습지 교사, 화장품 방문판매 등으로 자녀들 학비를 벌고 가정을 돌봤다”고 전했다.

이어 “21년 동안 우려곡절도 많았지만 하루도 쉼 없이 나눔을 실천하며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기쁘고 보람을 느꼈다”며 “이같은 실천의 원동력은 언제나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준 가족”이라고 고마워했다. 

◆“나는 복(福) 배달꾼” 

21년을 쉼 없이 달려온 그는 나날이 발전하는 우리사회의 기부·봉사 문화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기부·봉사는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게 아닌 만큼 조금만 둘러보면 작은 도움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며 참여를 독려했다. 

그는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은 한해 봉사자만 2만명 이상이고 겨울철 주말 봉사는 신청자가 많아 3대1의 경쟁률이 생길 정도”라며 “이런 것만 봐도 우리사회의 기부·봉사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성숙해지고 활동도 활발해졌는지 알 수 있다”고 뿌듯해 했다. 

허 대표는 초심을 잃지 않고 앞으로도 힘이 닿을 때까지 이웃사랑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한다. 대학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집안이 기울어 공부하기 힘들었지만 “돈이 별건가?”라고 스스로에게 힘을 북돋으며 작은 종이에 ‘1억원’이라고 써서 지갑에 넣고 다녔던 자신을 떠올렸다.

가난하지만 당당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서울에서 원주로 내려온 어느날 한 걸인이 찾아와 배고프다고 말해 점심값을 준 적이 있는데 감사하다며 돌아가던 그의 뒷모습이 아직도 선하다”며 “땅에서 복을 나눈다는 뜻을 가진 내 이름 ‘기복(基福)’처럼 앞으로도 우리 주변의 소외이웃을 살피고 돕는 ‘복 배달꾼’으로 평생을 살고 싶다”고 다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71호(2018년 12월19~2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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