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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라이프, 세계일보]"연탄, 사라지고 있지만 소외층에게는 여전히 생존 연료"
  • 게시판 작성일 아이콘2017.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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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라이프]"연탄, 사라지고 있지만 소외계층에게는 여전히 생존 연료"

2017/12/24 l 이창수 기자 l 세계일보




모두가 가난하던 그 시절,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건 떨어지는 낙엽도, 코스모스도, 황금빛 들녘도 아니었다. 연탄을 가득 실은 리어카가 좁다란 골목을 누비며 검은 재를 흩날리기시작할 때 사람들은 비로소 가을이 왔음을, 그리고 겨울이 오래지 않았음을 알아차리곤 했다.

시인 안도현이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고 노래한 ‘너에게 묻는다’(1994)는 그런 기억에서 비롯됐다. 3행으로 이뤄진 이 시가 발표된 이후 줄곧 사랑을 받았던 건 사람들에게
연탄과 연루된 기억의 밑바닥에 자리한 ‘어떤 온기’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달동네나 판자촌 등에 연탄을 후원하는 시민단체 ‘연탄은행’의 대표 허기복(61) 목사를 서울 노원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지난 6일은 칼바람이 매서운 날이었다. “그 시절의 추위와
가난한 온기를 누구보다 잘 압니다.”

절절했던 굶주림의 기억은 작은 교회의 평범한 목사였던 그에게 2002년부터 지금껏 수천만장의 연탄을 나눈 ‘연탄은행’을 만들게 했다. 그렇게 15년이 흐른 지금 허 목사는 ‘가난과
연탄을 빼놓고는 지나온 인생을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이 됐다.



 



 


연탄은행 대표 허기복 목사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노원구 백사마을에서 연탄을 나르고 있다. 허 목사는 “연탄은 가난한 이들의 생존 연료”라며 “정부가 소외된 이들에 대한 배려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목사가 처음 시민운동에 나선 건 1998년 4월이었다. 외환위기 직후 실직자가 넘치고 거리로 내몰린 사람이 어느 때보다 많았다.
강원도 원주의 한 교회에서 사목하던 그는 노숙인 등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밥상공동체’란 단체를 만들었다. 어린 시절의 배고픔과 추위를 몸이 기억해서였을까. 문득
‘적어도 내 주변 반경 4㎞ 내에는 굶주린 사람이 없게 만들자’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보릿고개가 여전하던 1960년대 배고픔을 겪지 않아본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는 가난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그는 어린 시절 “배고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허기’복이란 이름 때문인지 몰라도 유난히 배고픔을 많이 느꼈었던 것 같아요.(웃음) 과거에는 부끄러워 주위에 말을 못했지만 사실 저희 가족은 시골 마을에 있는 허름한 우리 같은
데에서 살았죠. 학창시절엔 항상 해진 신발을 신고 다녔는데 그마저도 밑창이 닳을까봐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신발을 손에 들고 맨발로 걸어다녔던 기억이 나요. 멀리 사람이 나타나면서둘러 다시 신고 사라지면 벗고 그랬죠.”




지독한 가난에 주눅이 들만도 했지만 그는 오히려 더 당당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남들 못지않게 훌륭한 어른이 돼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도희망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허 목사는 “어려웠던 만큼 주변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며 “‘주변을 돌아보며 사는 어른이 되자’란 생각을 많이 했다”고 기억했다. 그런 다짐들이 모여 탄생한 게 바로 연탄은행이다.

현재 그가 대표로 있는 연탄은행은 협의회 형태로 전국 각지 31곳에 흩어져 있다. 이들이 지금껏 나눈 연탄 갯수는 무려 4591만장. 그동안 거쳐간 자원봉사자만 43만명이 넘는다.

한 해 연탄 200만∼300만장을 나눌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단체이지만 시작은 초라했다.

2002년 6.6㎡(약 2평) 남짓 작은 공간에 길에서 주워온 합판을 둘러친 뒤 연탄은행이라는 간판을 써붙인 것이 전부였다. 어느 독지가로부터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 주라”며 연탄
1000장을 기부받은 것을 둘 데가 없어서 만든 일종의 창고였다.

허 목사는 “당시 기부를 받고 사람들이 연탄을 얼마나 쓰는지 한번 알아봐야겠다 싶어 달동네를 누볐다”며 “원주에서 연탄을 때는 집이 500곳이 넘었는데 대부분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분들이 적어도 추위 걱정은 하지 않게 하자는 생각에 연탄은행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닌 데다 육체노동이 필수적이어서 연탄은행을 꾸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변의 차가운 시선이 그를 힘들게 했다. “외지(서울)
에서 온 놈이 잘난 척한다”, “목사가 왜 교회 간판을 버리고 교회 밖 활동을 하느냐”,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 등 뒷말이 무성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2008년 회계처리 미숙으로 검찰에 구속된 일은 그에게 무척 뼈아픈 기억이다. 검찰은 당시 노숙자 쉼터를 만들기 위해 농지를 사는 과정에서 대표 명의로 땅을
매매한 점을 문제삼았다. 법인 이사회 결의로 이뤄진 사안이었지만 그가 수사를 받게 되자 언론에선 그에게 ‘파렴치한’ 딱지를 붙였다.

2010년 법원으로부터 “후원금이 증가하면서 자금 운영이 다소 미흡했지만 사익을 위해 자금을 전횡한 점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선고유예 판결을 받을 때까지 손가락질은 계속됐다.
외롭고 억울했지만 그를 믿어주는 사람이 많아 버틸 수 있었다. 과거 연탄봉사를 하며 인연이 닿았던 김용균 전 서울행정법원장은 그의 변론을 맡아주기도 했다.

“억울했지만 꼭 손해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용서’의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후에 검찰 고위 관계자가 ‘오해를 했다’며 미안함을 표했다고
들었어요.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런 시끄러운 과정 속에서도 연탄 후원이 줄어들지 않았던 점입니다. 감사한 일이죠.”


 

 




연탄을 쓰는 가정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지난 10월 연탄은행 조사 결과 전국의 연탄가구는 13만464가구. 2006년 27만100가구에 비하면 절반 이상 줄어든 수치다.

도시화로 인한 주거환경 변화가 주된 이유로 꼽히지만 일산화탄소 중독 등 연탄이 가진 근원적 위험도 한몫했다. 여러모로 연탄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연탄을 ‘쓸 수밖에 없는’ 이들을 위한 정책이 시급하다는 게 허 목사의 생각이다.

연탄을 쓰는 이들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다. 13만 연탄가구 중 6만3578가구가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가구이고 5만5621가구가 독거노인과 장애가정 등 지원이 필요한
소외가구로 집계됐다. 연탄의 별칭이 ‘생존 연료’인 이유이다.

요즘같이 추위가 몰아칠수록 허 목사의 마음은 급해진다. 거의 매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연탄을 나눠 주고 있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정부가
연탄가격 고시에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저소득층에 지원되는 ‘연탄쿠폰’이 예년에 비해 보름 이상 늦어져 영문도 모른 채 추위에 떠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는 “연탄가구 대부분 노령층에 홀로 사는 이들”이라며 “그 나이대 어른들이 그렇듯 약값이나 방값, 식비만으로도 허리가 휜다. 겨울철 연탄 수급은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소리를 높였다. 

그는 틈틈이 연탄값 인상의 기회만 노리는 듯한 정부 행보에 더 속이 탄다. 지난달 정부는 1장당 연탄가격을 534.25원으로 19.6% 인상했는데, 달동네나 도심에서 벗어날 경우
배송료가 높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가격은 장당 800원을 상회한다. 2010년 서울 G20(주요20개국) 정상회의에서 환경문제를 감안해 “2020년까지 국내 업체에 제공하는 석탄 보조금을 없애겠다”고 공언한 터라 앞으로도 연탄값은 매년 20% 안팎씩 오를 전망이다. 








“정부에서는 연탄쿠폰 가격을 올리면 된다고 하지만 현실을 모르는 얘기죠. 현재 수준으론 극빈층이 겨울을 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치입니다. 정부는 (연탄을 두고 탄소가스 배출문제 등을 걱정하지만 연탄가구가 전국에 13만가구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극빈층이어서 국가 보호가 필요한 상황이란 점을 생각해 보면 궁색한 변명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동안 사람의 관심이 떨어지는 한여름이나 추석연휴 전후 등에 기습적으로 연탄값 인상을 단행하던 정부 행보를 보면 ‘에너지 빈곤층’(소득의 10분의 1 이상을 광열비로
쓰는 가구)이 ‘함께 돌봐야 할 존재’라기보다 ‘귀찮은 존재’로 취급당하고 있다는 게 허 목사의 시각이다. 이들이 사회적인 힘이 있거나 정치인들의 당락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다수였다면 이같이 대응했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연탄값 인상에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공청회를 여는 등 여론을 수렴하고 구체적인 안전망 구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하던 연탄은 추억 한켠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젊은 세대는 연탄의 온기를 느껴본 경험이 드물고 책으로만 접해 봤을 뿐이다. 허 목사는 연탄의 이런 처지처
럼 우리 사회의 가난과 소외 역시 잊혀지고 있다는 우려 때문에 연탄은행 활동에 더욱 매진한다. 2011년 키르기스스탄에 이어 내년 카자흐스탄에 고려인 동포들을 위한 연탄은행을 세울 계획이라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연탄의 의미를 물었다.

“연탄은 혼자 타지 않아요. 겹쳐 쌓아진 두 개의 연탄 중 아래 연탄이 불을 올려줘야 위의 연탄이 타오르게 됩니다. 또 자기를 태워 타인에게 온기를 전한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지난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죠.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 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시구절을 종종 곱씹습니다.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음을 상징하는 게 바로 이 연탄입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사진=하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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