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수습기자들 서울 마지막 달동네서 연탄배달 봉사체험 
손수레 끌며 땀범벅, 할머니 웃음에 피곤 싹~
2014년 12월 24일
백상경·김종훈·오신혜 기자
'삶이란 나 아닌 다른 이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연탄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오전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에서 가수 안치환 노래 ‘연탄 한 장’이 울려퍼진다.
앞치마, 장갑, 팔토시 등으로 중무장한 자원봉사자 250여 명은 모두 분주한 손놀림으로 연탄 나르기에 여념이 없다.
연신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 날씨, 생각보다 무거운 연탄이 몸을 힘들게 하지만 누구 하나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이곳 주민들의 따뜻한 겨울을 위해 손에 힘을 더 꽉 준다.
나 아닌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노력하는 것, 무게 3.65㎏짜리 연탄은 그렇게 이들 손을 거쳐 36.5도 따뜻한 체온을 전하는 마법의 돌이 된다.
매일경제신문 기자들도 이들의 따뜻한 행동에 동참했다. 이날 서울연탄은행이 주최한 백사마을 연탄 나르기 봉사는 순수하게 개인봉사자들 신청만 받아 진행됐다.
김종훈·오신혜 매일경제 수습기자를 비롯해 젊은 부부, 대학생, 외국인, 탈북민 등 각계각층 사람이 모여 총 1만장에 달하는 사랑의 연탄을 나눴다.
실제로 체험한 연탄 나르기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기자들이 처음 받은 임무는 3~4장을 어깨에 지고 30~45도를 넘나드는 경사의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 한 집에 연탄 100장씩을 채워 넣는 것이었다.
꽁꽁 얼어 미끌미끌한 언덕길을 올라가는 동시에 소중한 연탄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몇 번 옮기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일단 연탄을 언덕 위에 모아놓고 봉사자 10여 명이 한 줄로 늘어서 손에서 손으로 연탄을 전달한다. 서툴렀던 손놀림에 점점 익숙함이 배어든 40여 분이 지나서야 간신히 연탄 100장 채워 넣기에 성공했다.
첫 임무를 무사히 마쳤지만 곧이어 ‘헉’ 소리 나오는 임무가 뒤따르며 기자들을 재촉했다. 이번엔 연탄 50장을 언덕 위 집으로 나르는 것이었다.
연탄 3~4개만으로도 목과 허리가 뻐근해질 지경이었건만, 이번엔 지게를 벗고 연탄 50장을 실은 손수레를 끌어야 한다. 기자들 외에 4명이 더 달라붙어 성인 6명이 미는데도 손수레는 도통 빨리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입은 벌어져 숨쉬기 바쁘고 등줄기엔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한참을 낑낑거린 끝에 목적지인 두 번째 집에 도착했다. 이곳에 사는 정영자 할머니(83)는 따뜻한 물 한 잔씩을 건네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정 할머니는 “정말 고마워. 이건 연탄이 아니라 금탄이여 금탄. 이거 없으면 겨울 어찌 날지 막막했어”라고 말했다. 이곳 달동네 주민들에게 연탄은 무엇보다 중요한 월동 수단이다. 부서진 집 외벽이나 얼기설기 비닐과 종이로 막아놓은 깨진 창문, 틈이 숭숭 뚫린 대문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연탄의 가치는 금 못지않았다.
집집마다 연탄이 쌓일수록 봉사자와 주민들 마음도 따뜻해진다. 서울대 중어중문학과에 재학 중인 박재연 씨(24)는 “방학 시작하자마자 이른 아침에 이곳까지 나오는 게 힘들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어려운 분들을 돕다 보니 무척 보람찬 기분”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봉사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탄을 지원받은 박영춘 씨(36)는 “겨울마다 이렇게 연탄은행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꼭 도움을 주면서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탈북자모임 대표를 맡고 있다는 강룡 씨(37)는 “한국에서야 이젠 잘 안 쓰는 연탄이지만 북에선 이것도 귀한 연료라 감회가 남달라 매년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며 “연말에 북한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동포들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 이렇게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공적인 이날 연탄 지원 행사와는 대조적으로 연탄은행에 대한 기부는 점점 줄고 있어 관계자들과 주민들 근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허기복 서울연탄은행 대표는 “지난해에는 300만장 모으기를 목표로 해서 450만장 기부를 받았는데, 올해는 기업들 후원이 40%가량 줄면서 목표치보다 100만장 모자란 200만장을 모으는 데 그쳤다”며 “그래도 개인 후원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에 남은 겨울 동안 더욱 연탄 지원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백상경 기자 / 김종훈 기자 / 오신혜 기자]
원본출처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4&no=1564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