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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인터뷰] 15년째 밥상공동체 운영 허기복 목사
  • 게시판 작성일 아이콘2013.08.21
  • 게시판 조회수 아이콘조회수 616
[THE 인터뷰] 15년째 밥상공동체 운영 허기복 목사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나눌 수 있어…
'따뜻한 기적' 함께 만들어요


IMF 직후 무료급식소 차려 소외 이웃 보듬고
2002년엔 '연탄은행' 설립… 배달까지 도맡아"
시민 후원으로 '행복센터' 마련, 희망 나눌 것"

소년조선일보 2013-03-07
“영차!” 만원감동 행복센터에 마련된 ‘연탄은행’ 앞에서 허기복 목사(밥상공동체 대표)가 익숙한 동작으로 연탄 지게를 지고, 3.6㎏의 연탄을 들어 올렸다. 그는 15년간 밥상공동체를 운영하며 어려운 이웃을 위한 무료급식과 연탄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밥과 연탄. 이 두 가지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한 끼의 배부른 식사와 따뜻한 잠자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는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을 겪으며 절실히 깨달았다. 15년째 밥상공동체복지재단을 운영하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무료급식과 연탄나눔을 실천하는 허기복(57세) 목사 이야기다.
최근 밥상공동체가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만원감동 행복센터’에는 무료급식소, 연탄은행, 어르신 공부방, 노숙인 목욕탕 등 소외계층을 위한 편의시설이 꽉 들어찼다. 공사비 14억은 후원자 5만 명이 1만 원, 2만 원씩 모아 마련했다. 지난달 27일 만난 허 목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뤄낸 따뜻한 기적”이라고 했다.
◇1998년 무료급식 시작… 총 85만 명에게 제공

허기복 목사의 어릴 적 별명은 '허기진'. 늘 배고픈 그에게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집이 무척 가난했어요. 쌀과 연탄을 외상으로 들여놓고 갚지 못해서 어머니가 시달리는 모습을 자주 봤죠. 어린 마음에 '나라도 적게 먹어서 어머니 걱정을 덜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쌀과 연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죠."

목사가 된 것도 어머니의 영향이었다. "어머니는 제게 '어려워도 반듯하게 살아야 한다. 목사가 되면 어려운 사람을 먼저 살피라'고 하셨어요. 신학대에 다닐 때도 형편이 무척 어려웠어요. 신발 닳는 게 두려워서 지나가는 사람이 없을 땐 신발을 들고 다녔지요(웃음). 그때 결심했어요. 평생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살겠다고요."
1989년 목사가 된 그는 1994년 서울 망우동 교회의 담임목사직을 그만두고 강원도 원주로 내려갔다. 신학대 시절의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주변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어요. 고민 끝에 사표를 냈죠. 원주에 어려운 교회가 있다는 얘길 듣고 무작정 내려갔어요. 교인이 50명도 안 되는 작고 허름한 교회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1997년 우리나라에 IMF 외환위기가 찾아왔고 거리엔 실직자들과 노숙자들이 넘쳐났다. 허 목사는 1998년 4월 '밥상공동체'를 세우고 원주 쌍다리 밑에 배곯는 이들을 위한 무료급식소를 차렸다. 필요한 돈은 시민 모금으로 마련했고 인력은 자원봉사를 모집해 충당했다. 허 목사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밥상공동체는 시민 모금과 자원봉사로 꾸려지고 있다. 정부 도움 없이 시민들의 힘으로 이뤄냈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다리 밑에서 시작된 무료급식소는 현재 만원감동 행복센터 2층에서 운영되고 있다. 하루 평균 150~180명이 이곳을 이용한다. 누적 이용자 수는 85만 명. "무료급식이지만 따져보면 완전히 '공짜'는 아니에요. '식사 자존심 값'이라고 해서 깡통이나 빈 병 같은 걸 받고 있어요. 당당하게 식사하시라고요(웃음)."
◇연탄나눔·행복센터… 순수 후원금으로 이뤄내

'연탄은행'을 세운 건 2002년의 일이다. "하루는 할머니 혼자 계시는 가정을 방문해 청소를 해 드리는데 방이 얼음장인 거예요. 한겨울 냉방에서 지내는 할머니를 보며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마침 연탄을 후원하겠다는 분이 나타났어요.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죠. '그래, 연탄이 있었지!' 그래서 연탄은행을 만들게 됐어요. 누군가 연탄을 맡겨놓으면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는 게 은행이랑 비슷하잖아요."

연탄은행에 최초로 1000장의 연탄이 '입금'됐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은행에서 하루 5장씩 연탄을 가져다 썼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는 연탄을 배달해 주기도 했다. 이 모습이 방송에 소개되면서 서울에서도 요청이 왔다. "서울 곳곳을 발로 뛰며 조사해 보니 100가구 이상 연탄을 때는 동네가 있더라고요. 중계본동 104마을이었죠. 거기에 연탄은행 2호점을 세웠어요."

시민 후원금으로 연탄을 구입해 필요한 가정에 지원하는 연탄은행은 현재 전국 31개 지역에 33호점까지 생겨났다. 지난 2011년에는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 해외 연탄은행 1호점을 설립, 1년에 연탄 10만 장씩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나눈 연탄 개수는 약 2700만 장. 1년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 수는 4만 명에 이른다. 한 장에 3.6㎏ 나가는 연탄을 허 목사는 봉사자들과 함께 직접 져 나른다.

"요즘 같은 3~4월은 연탄 때는 가정엔 '보릿고개'예요. 꽃샘추위 때문에 날은 추운데 연탄 후원은 줄어들고 봉사자도 별로 없거든요. 이번 토요일에도 104마을에 연탄 나르러 가요. 2시간 정도 연탄봉사 하고 나면 다이어트가 절로 됩니다(웃음)."

오는 13일 준공식을 갖는 '만원감동 행복센터'는 밥상공동체의 모든 복지사업을 총괄하는 관제탑 역할을 하게 된다. "많은 후원자가 센터 건립에 힘을 보태주셨어요. 밥상공동체의 도움을 받은 할머니 한 분은 파지를 수거해 번 돈을 후원금으로 내셨죠.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신 거예요." 허 목사는 "돈이 아니라 마음이 있으면 얼마든지 나눌 수 있고, 그 마음이 모이면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다"며 웃었다. "가난한 이웃들이 센터를 통해 희망을 찾고 밝게 살아가는 모습을 꼭 보여 드리겠습니다."

① 밥상공동체의 새 보금자리 ‘만원감동 행복센터’.
② 센터 내에 마련된 ‘밥상공동체 역사 알기’ 전시장 모습.
③ 센터 외부에 설치된 ‘연탄은행’.
김시원 기자
만 14세 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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