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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공보] 가난한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
  • 게시판 작성일 아이콘2026.04.30
  • 게시판 조회수 아이콘조회수 6
26.04.03.(금) / 한국기독공보 / 표현모 기자



1990년대 말, IMF라는 거대한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국가의 보호망조차 닿지 않는 소외된 이웃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분들을 위해 원주천 쌍다리 밑에서 처음 밥상을 차렸다. 우선 배고픔을 면하게 해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밥을 드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듣게 됐다. 어디서 주무시는지,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는지, 무엇이 가장 힘든지 그 이야기들을 빠짐없이 기록해 두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소박하면서도 절실한 것이었다.

"그저 쌀만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허드렛일이라도 해서 내 손으로 벌어먹고 싶다."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들이 진정으로 갈망한 것은 시혜적인 동정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자존감과 자립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진정한 섬김은 밥 한 끼를 넘어, 한 사람을 다시 살게 하는 생명 사역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때부터 취업을 연결하고 맞춤 일자리도 만들기 시작하며,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갔다.

사역이 깊어지면서 뜻하지 않은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교회 성도들은 처음에는 어르신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잘 씻지 못해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결국 소외된 이웃들을 중심으로 작은 예배 공동체를 만들었다.

우리 어르신들은 글을 잘 모르셔서 찬송가를 잘 보지 못하셨다. 그래서 모두가 쉽게 따라 부르고 예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찬송가 한 소절이 끝날 때마다 모두가 큰 소리로 "나~도!"를 외치는 방식을 만들었다.

"예수 따라가면, 복음 순종하면"이라고 선창하면 어르신들이 "나~도!"라고 화답했다. 언제 "나~도"를 외칠지 집중하다 보니 예배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찬송을 몰라도 누구나 주인공이 되어 하나님께 고백을 드릴 수 있었다. 비록 박자는 어긋나고 연습도 꽤 필요했지만, 그 '나~도'라는 외침은 그분들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재의 선언이자 뜨거운 신앙고백이었다.

예배의 핵심 요소인 찬송, 기도, 말씀, 헌금을 온전히 갖추고 싶었지만,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헌금은 큰 부담일 것 같아 처음에는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어르신들은 "목사님, 우리를 뭘로 보십니까? 파지를 팔아서라도 10원, 100원 낼 수 있습니다"라며 서운함을 비치셨다.

가난하다고 해서 예배의 권리와 봉헌의 기쁨을 빼앗는 것은 오히려 그분들의 존엄을 해치는 일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독특한 규칙을 정했다. 헌금 상한선을 2000원 미만으로 정한 것이다. 10000원을 내시면 8000원을 거슬러 드렸고, 5000원을 내시면 3000원을 거슬러 드렸다.

찬송하고 "나~도"를 외치는 와중에 잔돈을 거슬러 주느라 예배 시간은 더 분주해졌지만, 그 과정에서 어르신들은 '나도 드릴 수 있다'는 자부심과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느끼셨다. 그 헌금은 다시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의 방세를 지원하는 사랑의 마중물이 됐다.

어느 날, 파지를 주우며 생계를 잇던 한 어르신이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편지 한 통을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이라면, 목사님은 우리에게 밥을 주고 잠을 자게 해 주고 아플 때 병원에 데려다주는, 우리를 지켜 주는 어머니 같은 분입니다."

이 고백을 읽으며 깨달았다. 교회가 이웃을 돕는다는 것은 우리가 주고 싶은 것을 일방적으로 던져 주는 것이 아니다. 그분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그 필요를 채우며 곁을 지키는 것이다.

밥상 하나, 연탄 한 장에 담긴 진심이 가장 낮은 자리로 흘러갈 때 주님의 사랑은 비로소 완성되어 가는 것 같다.

오늘도 밥상을 차린다. 그 따뜻한 밥상 위에서 주님의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가장 뜨거운 온기로 전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허기복 목사 / 밥상공동체복지재단 대표
만 14세 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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