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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빌라촌 뒤 비닐하우스촌에서 만난 이순자 할머니의 겨울… “연탄불 꺼뜨리면 살 수 없어… 봉사자들 늘 고맙다”
  • 게시판 작성일 아이콘2026.01.30
  • 게시판 조회수 아이콘조회수 2
26.01.30.(금) / 국민일보 / 김용현 기자
 

연탄창고·쪽방 옹기종기 붙어 있어
대부분 기초연금 등으로 살아가는
노인들… 1만보 걸으며 건강 돌보는
이 할머니, 연탄은행 지원 덕분에
24시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어 감사

 
28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 전원마을. 세련된 회색 외벽의 신축 빌라촌을 지나자 검은 차광막을 덮은 66가구의 비닐하우스촌이 숨겨진 모습을 드러냈다. 골목 어귀마다 연탄 특유의 매캐한 냄새가 맴돌았고 타버린 하얀 연탄재가 담긴 투명 비닐봉투들이 마을 앞에 쌓여 있었다.
 
골목에는 쪽방과 연탄창고가 옹기종기 붙어있었다. 보라색 플리스 재킷에 검은 털모자를 눌러쓴 이순자(81)씨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방문 앞에 놓인 연탄보일러 뚜껑을 열자 시뻘건 열기가 올라왔다. 구멍 2개에 연탄이 들어가는 ‘2구 3탄’ 난로다. 이씨는 “이게 내 밥줄이고 생명줄”이라며 “비닐 집이라 외풍이 세서 하루라도 불을 꺼뜨리면 사람이 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곳 주민들은 각자 말하기 어려운 사연을 안고 마을로 흘러들어 왔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굳이 자세히 묻지 않아도 서로 음식을 나누면서 가족처럼 살갑게 지낸다. 대부분이 노령층으로 기초연금과 노인 일자리로 버티면서 살아간다. 이씨는 “여기선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안다”며 “가난한 사람들끼리 서로 뭐가 생기면 나눠 먹고 누가 기침이라도 하면 바로 들여다본다”고 전했다.
 
이씨는 이곳 마을의 ‘주민회장’으로 통한다. 20년 전 가족의 사업 실패로 짐을 놓을 곳이 필요해서 “딱 3년만 버티자”며 들어왔던 이곳이 삶의 터전이 됐다. 매일 새벽 5시30분이면 이씨는 동네 친구들을 불러내 같이 마을을 세 바퀴, 총 1만 보를 걷는다. 다리가 아파 주저앉고 싶은 친구가 있어도 “그래도 나와서 걸어야 산다”며 손을 이끈다. 이씨는 “가진 게 건강뿐이니 자식들한테 짐 안 되려면 같이 운동도 하고 서로 건강한 음식도 챙긴다”고 말했다.
 
이씨의 방은 24시간 땔 수 있는 연탄 덕분에 따뜻한 온기가 돌았다. 처음 이곳에 정착했을 때만 해도 웃돈을 줘가며 직접 연탄을 사서 땠지만 서울 시내 연탄 공장이 사라진 지금은 어디서 배달을 받아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다. 이씨가 마을 자치회를 꾸려 연탄은행과 인연을 맺은 덕분에 올겨울에도 마을 전체에 연탄 1만7000장이 전해졌지만 비닐하우스촌은 꽃샘추위를 넘어 5월까지 연탄을 때는 곳이 많다고 했다.
 
이씨는 “요즘 후원이 많이 줄었다는데 늘 받는 마음이 염치가 없는 것 같아 미안하다”며 “부족하다고 말하면 그쪽도 난처할 텐데, 우리는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아껴 쓰는 수밖에 없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도 “연탄은행 봉사자들이 지게를 지고 와 따뜻하게 손잡아줄 때 딸 같고 손녀 같아 고맙다”며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벌써 얼어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 굴뚝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씨는 대문 앞까지 나와 “갈 데 없는 사람들이 정 붙일 수 있게 해 준 이곳이 고맙고, 내 발로 걷고 밥해 먹으며 친구들이랑 웃으며 사는 게 행복”이라며 “죽는 날까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는 게 유일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만 14세 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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